고향 장성역/초등학교장선생님/비(Rain)
2012년10월21일
시골 초등학교 총동문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다.
난 전 날 고속 버스를 타고 내려가 내가 자란 "기산리 부동" 웃 동네 축령산 팬션에서 친구들과 하룻밤을 자고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나에게 이번 체육대회 참석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그러니까 내가 다닐때는 국민학교였다.
그때 국민학교 시절 교장선생님을 찾아 뵐 계획이 있었기때문이다.
광주 첨단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친구가 손님으로 찾아 오신 교장 선생님께서 보청기를 맞추시는데
존함이 똑같아서 여쭤봤더니 맞다고 하시면서 반가워 하셨고
그 후 가끔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뵙곤 한다고 요번에 내려오면 같이 가서 뵙자고 해서 교장선생님을 뵈러 갔었다.
올해100세!
눈이 하나 약간 찌그러지신 거 외에는 지금도 건강하셨다.
매일 아침이면 사모님하고 둘이서 심심해서 시내 버스를 타고 첨단 신도시를 한 바퀴씩 돌아 오신다면서
요즘은 찾아 주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적적한데
"자네가 이렇게 찾아와 줘서 너무 고맙다"고 내 손을 잡고 놓지를 않으셨다.
사모님께 술 상을 봐 오라 하시면서 제일 오래된 메실주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사모님은 2007년산 메실주를 가져오셨다.
교장 선생님과 건배를 하고 와인잔으로 두잔을 마셨더니 금새 취기가 돌았다.
내 이름 김형주 교장 선생님 존함은 김행규 이름이 비슷해서도 잊을수 없는 분이지만
나는 교장선생님에 대한 잊지 못 할 특별한 기억이 또 하나 있다.
내가 6학년 2학기때 서울로 전학을 간다고 인사를 하러 엄마하고 학교 밑에 있는 성당앞 교장선생님 댁을 방문 했었다.
난 정말
내가 태어나서 12년을 산 고향을 두고 또 정든 학교와 학교 친구들과 동네 8명의 친구들을 두고 서울 가기가 죽는것 보다 싫었다.
난 교장 선생님을 붙들고 사정했다.
"교장 선생님 나 서울가기 정말 싫어요"
그때 교장선생님께서 우리 엄마한테 이렇게 말씀 하셨다.
"형주가 저렇게 서울 가기 싫어 하는데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니 내가 장성에서 키울테니 우리 집에 두고 가시면 안 됩니까"라고
나는 정말 서울 가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교장선생님 손을 잡고 딱 붙어서
"그래도 되요? 교장선생님~정말 서울가기 싫어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안된다면서 내 손을 붙잡고 싫다는 나를 끌다시피 장성역까지 데리고 가서 서울행 기차를 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난 왜 그랬을까?
정말 서울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기치를 타고 기차가 장성역을 출발하여 장성이 안 보일때까지 플랫홈 난간을 잡고 서 서 얼마나 울고 또 울었는지 모른다.
그때 그 장성역!
지금은 콘크리트 건물로 제법 역 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그때는 기와 지붕으로 지어진 조그만 간이역이었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아는 지인을 만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KTX는 출발해 버리고 11시15분 서울행 새마을호 기차를 예매했다.
약 한시간 가량 시간이 남아 혼자서 우두커니 역내에 앉아 지난날을 추억해 보았다.
기차는 새벽 3시45분에야 서울 용산역에 도착했다.
김행규 교장 선생님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김행규 교장 선생님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