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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무명시 모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길상사 실제 창건주인 본명 김영한여사의 법명은 길상화다.

백석 시인에게는 자야로 불렸고 요정에서는 김진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김영한은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한다.

김영한은 집안이 파산하게 되자 열여섯 살의 나이로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된다.

기생이라고는 하지만 동경의 문화학원을 수학한 엘리트 여성이며 기생생활 중에도  '삼천리문학’에

몇 편의 수필을 발표하며 이름을 알린 문학여성이었다.

조선어학회 회원이었던 해관 신윤국은 김영한의 능력을 인정해 일본 유학을 주선해준다.

신윤국의 후원으로 도쿄에서 공부하던 중 스승 신윤국이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

함흥에서 스승의 면회를 시도했으나 면회가 불가능해 함흥에 눌러앉았다.

이 때 함흥 영생여고 선생님인 백석과 김영한의 운명적인 만남은 이루어졌지만 집안의 반대로 혼례를 치루지 못했다.

백석과 자야가 동거한 기간은 불과 3년여. 백석은 자야와 사랑을 하는 동안 사랑을 주제로 한 여러 편의 서정시를 썼다.

노년의 자야는 1000억원대의 재산인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기부했다.

“그동안 고생해서 모은 천억대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라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후회는 무슨 후회! 천억이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해”

라고 대답해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생전의 김영한은 백석의 생일인 7월1일이 되면 하루 동안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못다 이룬 사랑하는 연인 백석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 김영한은 1997년 창작과비평사에 2억을 출연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했다.

시집을 대상으로 한 백석문학상은 1999년을 시작으로 매년 수상작을 발표하고 있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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