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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야기

이천수 보아라

 

 

 

축구선수 성공조건은 금욕, 절제 그리고 인내 (다음에서 펌글)

 

 

 

[포포투 플러스] 최근 한국 축구 팬들은 어느 슈퍼스타의 추락에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다.

과연 프로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란 무엇일까? 실력? 주변의 도움? 노력? 뜨거운 열정? <포포투>의 '시크릿 플레이어'가 들려주는 경험담에 귀를 기울여보자.

(편집자 주- '시크릿 플레이어'는 프리미어리그를 포함해 각기 다른 4개 디비전에서 15년여 동안 뛰었다. 국가대표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17세 당시, 나는 프리미어리그 클럽의 연습생으로 60파운드의 주급을 받았다.

그런데 한 여학생을 놓고 건설업계에서 일하는 친구 녀석과 경쟁을 벌였다.

그 친구는 나보다 돈을 3배 정도 많이 벌었던 덕분에 자가용을 몰며 밤마다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었다.

나는 오전 훈련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녀석이 여자를 차지했다.
프로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라면 이런 희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친구들이 술, 담배, 심지어 마리화나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여자 아이들과 어울릴 때 훈련장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일은 축구선수라면 모두 겪는 과정이다.

희생이란 올가미를 덮어쓰는 쪽은 선수만이 아니다. 선수의 가족도 이래저래 고생이다.
나의 부모님께선 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우기 위해 헌신하셨다.

자식 뒷바라지로 취미 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하셨다.

남는 시간에는 늘 나를 이리저리 데려다 주시느라 바빴다.

내가 뛰는 경기를 빠짐없이 지켜보기도 하셨다. 경제적 부담 역시 컸다.
어려운 형편의 유소년 선수를 돕는 기금을 조성하는 프리미어리그 클럽도 있긴 하지만, 작은 팀들의 상황은 여전히 밝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많은 유망주가 현실적인 벽에 가로막혀 축구를 포기한다.

대개의 경우 부모가 먼저 두 손을 들고 이후 아이가 마지못해 그 결정을 따른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기본적인 가족 부양도 벅찬데, 축구를 하는 자식의 원정경기에 따라다니고 그때마다 지갑을 열어야 하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부모는 자식이 프로축구선수가 되기까지의 장기 레이스에서 완주할 수가 없다.
축구선수로서의 길을 걷는 자식을 둔 부모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누구나 자식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

자신들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모두가 그런 꿈을 실현하진 못한다.
운 좋게도 나는 성공을 거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모님께는 엄청난 빚을 져야 하셨다.

앞서 말한 친구(건설업계에 종사한다는)보다 내가 더 좋은 차를 살 수 있을 때까지 부모님의 고생은 계속됐다.

 

15살 때 일이었던 것 같다.

비가 무섭게 휘몰아치는 날씨 속에서 경기를 치른 적이 있다.

나중에 내가 성공한다면 그날 함께 뛰었던 친구들에게 반드시 뭔가를 선물해주겠노라고 다짐했다.

혼자만의 약속을 나는 결국 지켰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이해서 친구들에게 미국과 두바이 여행을 선물해줬다.
떳떳한 프로축구선수가 되기까진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도 방심은 금물이다.

꼭 화를 부르게 되어있다.

연습생 시절 내 동료 한 명은 작은 유혹을 견디지 못해 결국 장래를 망쳤다.

훈련에 매진할 시간도 부족했던 판에 그 친구는 키프로스로 놀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서 프리시즌 훈련은 어쩔 것이냐며 극구 만류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용감하게도 그 친구는 몇 주 동안 코치를 계속 보챘다.

휴가를 보내달라며 집요하게 칭얼거렸다.

코치는 못 이기는 척 그를 1군 감독에게 보냈다. 그러면서 빈정거렸다.

"너라는 놈은 정말 어쩔 수가 없구나"라는 뉘앙스가 엿보였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바보 같다고 해야 할지.
새파랗게 어린 소년의 당돌한 요구에 감독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휴가를 가게 해줬다.

그 친구는 키프로스에 가서 신나게 놀았고, 클럽으로 돌아온 뒤 감독은 그에게 방출 결정을 통보했다.
사실 휴가를 떠나기 전부터 그의 입지는 이미 위태로웠다.

재계약 여부에 대한 코칭스태프의 고민을 그 친구 스스로 시원하게 해결해준 꼴이 되었다.

그의 문제는 실력이 아니라 열정 부족이었다. 대부분의 지도자는 그 또래의 유망주를 볼 때 능력만큼이나 태도를 중시한다.

그 친구가 키프로스에서 행복에 겨운 시간을 보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꿈을 좇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꿈을 이루고 나면 보상이 뒤따른다.

남들이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 나는 축구화를 신고서 정신 없이 지낸 경우가 더 많았다.

그리곤 연말연시 리그 일정을 끝마치고 모처럼 휴가를 받아도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축구선수로 살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일반인 친구들과 멀어지게 된다. 그 대신 동료들과 가까워진다.

유소년 시절 함께 생활하며 꿈을 키운 동료를 최고의 친구로 꼽는 선수가 의외로 많다.

말이 통하기 때문일 것이며 비슷한 감정을 나누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힘든 시기를 거친 끝에 프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가정하자. 그게 성공일까? 아니다.

새로운 무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관문이 또 남아있다.

예전 프리미어리그 클럽에서 뛸 때, 1군 엔트리에만 이름을 올려보고 한 번도 경기에 나가지 못한 동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선수는 밤마다 친구들과 놀러 다녔다. 어느 날 같은 포지션의 주전이 부상을 당해 그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갑작스럽게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이 성사된 것이다. 어떻게 되었을까? 뻔한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그 친구는 당연히 한심한 플레이를 보였다. 그의 선수 경력은 그날로 사실상 끝이 나버렸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프로축구선수로 성공하기도 쉽지는 않다.

선수 본인의 힘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주변의 애정 어린 도움과 격려 속에 팔팔한 나이에 누리고 싶은 것들을 과감히 포기하면서 한 계단씩 차근차근히 오르는 인내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