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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야기

김수연, 하늘로 쏜 '16강 진출' 골 '할머니 보셨죠?'..

 

 

김수연, 하늘로 쏜 '16강 진출' 골 '할머니 보셨죠?'..

 

[일간스포츠 김희선]

스페인전 후반 33분 역전골을 터트린 김수연(오른쪽)이 박희영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할머니 돌아가시고 수연이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김수민(35)씨 목소리에는 기쁨과 애틋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김 씨는 18일 오전 초조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동생 김수연(26·화천 KSPO)이 교체 투입돼 그라운드를 밟자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동생이 그토록 바랐던 월드컵 무대였다. 후반 33분 김수연이 통쾌한 역전골을 터뜨리는 순간 온 국민은 환호했다. 그러나 김 씨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는 하늘에 있는 할머니를 떠올렸다.

한국 여자축구가 월드컵 사상 첫 승과 16강을 동시에 달성했다.

한국은 18일(한국시간) 캐나다 오타와 랜즈다운 경기장에서 열린 캐나다 여자월드컵 E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스페인에 2-1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비기기만 해도 16강 탈락인 한국은 선제골을 내줘 벼랑 끝에 몰렸다. 그러나 후반 8분 조소현(27·현대제철)의 동점골에 이어 김수연의 역전골이 나왔다. 김수연이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가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들어갔다. 한국은 1승1무1패(승점 4), 조 2위로 16강 무대를 밟았다. 한국은 22일 오전 5시 프랑스와 16강전을 치른다.

스페인전을 앞둔 15일, 훈련에 임하고 있는 김수연(왼쪽). 그녀는 마지막 경기에라도 뛰고 싶다던 꿈을 결국 이뤘다.


◇ 천국의 할머니께
김수연의 역전골은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바치는 득점이었다.

김수연은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을 모두 여의었다.

큰 언니 김수민 씨와 김수연, 그리고 막내 동생 김수진(21)씨 세 자매는 할머니 손에서 컸다.

세 자매에게 할머니는 부모 이상의 존재였다.

그러나 지난 4월 사랑으로 세 자매를 지탱해주던 할머니가 눈을 감았다.
할머니를 보낸 김수연은 태극마크에 대한 열의를 더 불태웠다. 천국의 할머니에게 월드컵 무대에 선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맏언니 김수민 씨는 "수연이가 꼭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 했다"고 회상했다.

독기를 품은 김수연은 결국 여자대표팀 윤덕여(54) 감독의 눈에 들어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월드컵 직전이었던 지난달 31일 미국과 평가전에서도 선발 출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동생 활약을 칭찬하는 기사를 매일 찾아보며 흐뭇해하던 김 씨는 미국과 평가전 직후 가슴 철렁한 연락을 받았다.

동생 수연으로부터 평가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먹먹해진 김수민 씨는 해줄 말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라. 잘 될 거다"며 속상한 마음을 애써 숨기고 동생을 달랬다.

그런 언니에게 김수연은 '다행스럽게도 회복 속도가 빠르다.

마지막 경기라도 꼭 나가고 싶다'고 다부진 메세지를 보내왔다.

김수연은 할머니, 언니와 약속을 지켰다.

스페인과 최종전에서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수세에 몰려있던 한국은 김수연이 들어가면서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운명의 후반 33분, 김수연은 기가 막힌 슈터링으로 한국을 16강에 올려놨다.

그는 경기 후 "처음엔 골이 아닌 줄 알았다. 실감이 안 났다.

들어갔다고 생각한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기적의 '슈터링'이었다.

◇ 자랑스런 내동생

국가대표 김수연은 집안의 자랑이다.

세 자매 중에서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빼닮아 고모들은 김수연을 볼 때마다 활짝 웃는다.

시즌 중에는 숙소에서 지내는 만큼 얼굴 볼 기회가 많지 않아

김수민 씨의 두 아이는 "'축구 이모'는 언제 오냐"며 매일 엄마를 조른다.

아이들은 김수연이 놀러오면 '축구 이모'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좋은 조카이자 이모일 뿐 아니라 세 자매 중 가장 속 깊은 둘째다.

김수연은 어렸을 때부터 힘들고 아픈 일이 있어도 잘 털어놓지 않았다.

김수민 씨는 "운동을 해서 그런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오히려 내가 수연이에게 더 많이 의지한다"며 "

원래 자랑을 잘 못하는 성격인데 수연이만큼은 어딜 가도 자랑하게 된다"고 뿌듯해 했다.

맏언니 수민 씨는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둬 동생이 최대한 늦게 한국에 왔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이어 "돌아오는 날 한달음에 공항에 나가 동생을 제일 먼저 꼭 안아주겠다"고 말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몫까지. 따뜻하게.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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