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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먹고 사는 중년

새구 지름병

 

 

새구 지름병/비(Rain)

 

 

나는 해가 지고

전남 장성 황룡 오일 장날이 파하면

어김 없이 새구(석유) 지름(기름)병을 들고 집에 가야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아버지와 엄마가 황룡 오일장에서 옷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나는 여느 장날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파하고 황룡 오일장에 갔다.

장날이면 볼거리도 많고 아버지가 내가 좋아하는 국밥(지금 순대국)을 사주기 때문이다.

 

그 날도 나는 추운데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옷 전 모퉁이 옷속에 파묻혀 잠이 들었다.

해가 지고 옷을 큰 뭉치로 쌓아서 밧줄도 꽁꽁 묶어서 도락구(트럭) 싣고 아버지는 다음 오일장으로 가고

엄마와 나는 황룡강 뚝방 길을 걸어서 집으로 오고 있었다.

오일 장날이면 나는 꼭 새구 지름병을 들고 집으로 온다. 

대두병 그러니까 한 되 짜리

높이가 약 40쎈티 굵기가 지름이 약 10센티 정도의 어린아이가 들기엔 좀 큰 병이다. 

지금 1.8리터 생수 패트병 정도의 양이 들어가는 큰 소주병이다. 

그 소주병 목에 닥나무로 새끼처럼 꼬아서 묶어서 줄 고리를 만들어 팔목에 걸고 닥나무로 묶은 병목을 잡아야 한다.

왜냐면 들고 오다 놓치면 병이 깨져서 새구 지름을 다 쏟아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때는 시골에 전기가 들어 오지 않아서

처음엔 호롱 불을 켜다가 나중엔 호야등을 켜고 밤엔 공부도 하고 생활을 했다.

그러기 때문에 동네 집집마다 오일 마다 돌아 오는 장날에 새구 지름을 사지 않으면 불을 켤 수가 없었다.

우리 동내엔 내가 서울로 전학을 오던 초등 6학년 그해 봄에 전기가 들어 왔다.

 

그 날은 눈이 내리고 강바람이 많이 불어서 무지 추웠다.

엄마가 아버지가 입다가 구멍난 개실 독구리(털실로 짠 상의) 실을 풀어서 대 바늘로 짜 준 벙어리 장갑을 끼었는데도

얼마나 추웠던지 황룡강 뚝방길 중간쯤에 와서 새구 지름병을 땅바닥 눈위에 놓고 손시럽다고 안들고 간다고 벼텼다.(못된 놈!!!) 

엄마는 오남매 먹거리 및 필요한 것들을 한보따리 사서 머리에 이고

한손에 비릿내 나는 지푸라기로 묶으은 고등어를 한마리 들고 한손엔 돼지고기 국에 넣고 끓일 두부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손시럽고 춥다고 새구 지름병을 안들고 가겠다고 울면서 버텼다.

가던 길을 되 돌아 온 엄마는

" 우리 시째는 아들 중에서 질로 착헌디 무땀시 요로코롬 고집을 피운다냐~ 추운께 언능 지비 가자~언능 착허제"

"엄니는 맨날 나보고 착허다고 험시롱 나만 부려 먹는당게~ 인자 그런 거짓깔에 안속는 당게~ 손이 깨져 불라고 혀서 참 말로 못 들고 가겄당게"

나는 끝내 눈밭에 주저 앉아서 발을 비비며 울면서 새구지름 병을 안들고 간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를 달래던 엄마는

"애라 숭원~ 그것 좀 들고 가라고 허니께 고로코롬 고집을 피우냐 쯧 쯧

그려 엄니가 들고 갈팅게 너는 언능 싸게 싸게 지비 가거라"

나는 얼른 일어나 새구 지름병을 눈이 쌓인 땅바닥에 그대로 놓고

엄마를 뒤로 한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뛰어서 황룡강 상류 돌 다리를 건너 집으로 왔다.

 

지금도 어린 시절을 뒤 돌아 보면

엄마가 시키는데로 다 잘했는데 그 추운 겨울 날

엄마도 손도 무지 시러웠을텐데 어린마음에 손시럽다고

석유 기름병을  엄마가 들고 오게 했던 일이 두고 두고 후회가 된다.

엄마! 얼마나 손이 시러웠어요?

죄송해요!!

용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