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이면 교실 스피커를 통해서
"기산리 내기, 외기, 부동 그리고 서삼리 사는 학생들은 지금 책 가방을 싸서 귀가 하기 바랍니다"
비가 많이 와서 황룡강이 법람하기 전에 집에 가라는 방송 이였다.
나는 정말 집에 가기 싫었다.
읍내 사는 희성이 병극이 영주 그리고 기산리 부동에 사는 나.
이렇게 넷이서 성적 순위 경쟁을 했는데 왠지 수업시간을 빼 먹으면 성적이 떨어 질꺼라는 불안감 때문이였으리라.
희성이와 병극이는 이겨봤는데 여자 아이인 영주는 한번도 이겨 보지 못한채 6학년2학기때 서울로 전학을 왔었다.
32년이 지난 지금 동창회를 통해 만난 병극이는
서울대 문리학과를 졸업해 대전 대덕단지 연구원으로 있다가 지금은 대전에서 벤처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희성이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LG그룹 비서실에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자 아이였던 영주는 서울대 법대를 지망했다가 세번이나 실패를 하고 충격으로 머리에 이상이 있어 정신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번 보고 싶어서 영주 있는 곳을 친구들에게 여러번 물어 보았지만 대답을 회피를 했다.
언제가 한번 작정을 하고 찾아 나설 심산이다.
우린 동네 별로 모여서 영락없이 포로로 잡혀 가는 사람들 처럼 한줄로 서서
내리는 비를 쫄딱 맞고 황룡강까지 걸어 갔었다.
그땐 우산도 왜 그리도 귀했는지?
아침에 건너서 학교에 왔던 철다리는 흔적도 없고 시뻘건 황톳물이 우릴 삼킬듯이 넘실대고 있었다.
각자 아버님들 등어리에 업혀서 황룡강을 건너야 했다.
어른들은 경험이 많아서 물의 깊이가 낮은 곳을 알고 있었다.
물의 흐름이 빨랐기 때문에 물의 흐름을 이용해서 건너야 했다.
윗쪽에서 흐르는 물을 따라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 가면 건너편 아랫쪽에 다다랐다.
난 아버님 등에 찰싹 달라 붙어 소용돌이 치는 시뻘건 황톳물을 바라 보면서
아버님이 넘어지면 어떻하나 하는 생각을 늘 하곤 했었다.
물이 깊은 곳은 아버님 등에 업힌 내 등어리까지 차곤 했었다.
내가 서울로 전학오던 그해에 다리 공사가 시작 되었고
지금은 상류쪽에 큰 다리를 하나 더 놓았고 맨위 상류쪽 백양사 부근에 장성댐을 쌓아서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끄떡 없단다.
난 중년이된 지금도 비가 많이 오면
밤이면 영락없이 아버님 등에 업혀 시뻘건 황룡강을 건너며 아버님이 넘어지면 어떻하나 하는 꿈을 밤새도록 꾸곤 한다.
작년에 동창회를 통해서 한동네 살면서 같이 학교 다니던
광규.진옥.석철.양수.홍남.정옥이 옆집에 살던 순옥이 옆동네 사는 봉수,명희 그리고 수형이 승호를 다 만났다.
32년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중년이 되어 버린 지금 어린 시절을 뒤 돌아 보면 정말 소중하고 가슴벅찬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나는 지금도 어린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먹으며 활기찬 중년을 살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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