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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먹고 사는 중년

2박3일의 아름다운 추억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6월23일
 
고향 가는 날!
아침부터 뭐가 그리 바쁜지
소풍가는 날 잡아논 아이처럼 기분이 좋다.
시간이 왜 이리 안 가는지....
 
오후 4시30분 쯤에야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내차는 150킬로를 넘나들고 있었다.
7시30분에 광주에 도착해 재옥이네 오리 한마당으로 갔다.
 
순행이 봉수 재욱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서 나주로 갈뻔했다.
얼마나 헤멨는지 9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술잔이 오가고 알딸딸 해지고 즐거운 식사 시간이 흘러갔다.
난 원래 술울 안먹지만 친구들 만난 즐거움에 운전도 해야 하고 쇠주 딱 3잔만 마셨다.

 

 

11시30분쯤 순행이를 보내고
봉수 재욱이와 호텔 근처까지 왔다.
방을 예약해 놓고 봉수가 한잔 더 하잖다.
호텔 옆 해장국 집에 자리를 잡고 주거니 받거니
12시가 넘었으니 전화 하지 말라는 내 말을 뿌리치고 재욱이가 변정섭이를 불러냈다.
자다가 달려와준 "변정섭"이가 미안하고 고마웠다.
 
봉수가 엄청 취했다.
스위스전 축구를 꼭 보고 자자고 약속하고
택시를 타고 봉수와 재욱이가 집으로 돌아 갔다.
둘을 보내고 정섭이와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호텔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졸린 눈 부릅뜨고 축구할 시간을 기다렸다.
얼마나 졸리는지 몇번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드디어 새벽4시 결전의 시간이 왔다.
결과는 2:0으로 태극전사의 분패!
14명과 11명이 싸웠으니 어찌 이길수 있으랴!
축구가 끝나갈 무렵 동이트고 있었다.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일어나니 11시30분
부지런히 준비하고 약속 장소인 문화예술회관으로 차를 몰았다.
길수가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에술회관 내 "심포니"라는 레스토랑에서 아이스크림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재옥이 득기가 오고 봉수 재욱이 순행이 현영이 향금이가 도착하고 명희가 왔다.
어릴적에 자길 놀린다고 내 귀를 물어 뜯었다던 명희다 도착했다.
 
우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차에 타고 "축령산"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장성 ic를 빠져 나와
황룡강 다리를 건너려고 신호대기에 서 있는데
길수가 내가 살던 기산리 부동을 거쳐서 가자고 했다.
문화회관을 우측에 네가 살던 부동을 왼쪽에 끼고 달려나와 냇가 도로에 잠시 차를 세웠다.
흐르는 물속에 얼마나 고기가 많은지 물반 고기반이였다.
냇가 건너편에 보이는 산들!
내 어린날 땔감을 구하려 방학때면 지게를 지고 헤메이던 바로 그 산들이였다.
동네 형들과 토끼 몰이를 하던 추억이 묻어 있는 바로 그 산들이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쩌다 이리도 많은 세월이 흘러 버린것일까?
고향이 이리도 그립고 정겨우니 나도 이제 철이든거겠지!
차를 몰아 필암서원을 지나 왼쪽으로 댐공사 현장이 보였다.
 
댐 공사를 하는것을 보니 문득 어린시절 장마철이 생각났다.
비만 오면 물난리를 피해 산으로 피난을 가야했던 어린시절!
그때는 돈이 없어서 댐을 막을수가 없었으리라.
가난했던 어린시절!
댐이 막아지면 다시는 물난리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꼬불꼬불 길을 돌아서 드디어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윤연석"회장과 몇몇 친구들이 벌써 와 있었다.
음식이 차려지고 닭 백숙이 차려졌다.
닭다리를 들고서 한입 물어 뜯는 순간
 여름이면 아버님이 마당에 놓아 키우던 닭을 잡아서 뚝베기에 인삼을 넣고 끓여 주시던 일이 생각 났다.
오늘날 내가 이렇게 건강한 것도 여름이면 아버님이 끓여 주시던 그 삼계탕 덕인듯 쉽다.
고향에서 먹는 닭백숙은 얼마나 맛 있던지 내가 제일 많이 먹은것 같았다.
 
식사가 끝이날 무렵 신도규와 앵미가 도착했다.
10월 모임에 100명이 모이자는 등 회의를 마치고 명희와 재옥이가 집으로 돌아갔다.
남은 우리는 축령산 편백나무 숲으로 향했다.
 

 

와~~~~~~~~~~
도착하자 입이 딱 벌어져 다물수가 없었다
"춘원 임종국"씨!
한사람의 꿈과 짐념이 만들어낸 258헥타르의 편백나무 숲!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기상이 그야말로 장관이였다
20년을 나무만 심었단다.
언젠가 2년 동안 가뭄이 와서 나무가 말라 죽어 가니까
온 가족이 물게로 물을 져다가 물을 줘야 하는때도 있었단다.
처음엔 동네 사람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하더니
마침네 주민들도 감동을 받아 함께 물을 퍼 날랐단다.
 
그 어려운 시절에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양잠을 해서 번 돈으로 후세들을 위해 나무만 심었던 그사람!
임종국씨! 당신의 불타는 열정에 도전을 받습니다.
 
당신처럼 큰 일은 못해도 내가 맡은 분야에선 세계 최고가 되어 보겠다고.......
 

 

약수물을 까만 고무 두레박으로 퍼 올려 벌컥벌컥 마시고 공터에서 축구룰 했다.
나와 봉수 재욱이 정인이 치원이가 한편을 먹고 연석이 길수 순행이 득기가 한편이 되었다.
결과는 2;1로 우리가 졌다.순전히 봉수가 어영구영해서 졌다.ㅋㅋㅋ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나 어린날 우리집 앞 깽변에서 하던 축구 만큼이나 재미 있었다.
 
땀에 젖은 손과 얼굴을
대충 씻고 차를 몰아 장성댐으로 향했다.
메기찜에 밥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 친구들이 소화를 시키러 가잖다.
장성댐을 올라 가득 고인 물을 바라보니 또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비만 오면 교실 스피커를 통해서
"기산리 부동,외기,내기,서삼 사는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모이세요"
황룡강이 범람할줄 모르니 빨리 집으로 돌아 가라는 것이였다.
우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들 마냥 줄을 서서 그 비를 다 맞으며 집으로 돌아 가곤 했었다.
그땐 가난해서 어쩌면 그리도 우산도 없었는지?
이 댐이 생긴 후에는 해마다 격던 물난리도 없어 졌으리라!
고 "박정희"대통령께 늦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향금이와 현영이 미숙이가 애국가를 부르며 대~한민국을 외치며 신이 났다.ㅎㅎㅎ
 
댐을 걸어 계단을 내려와
꽃길을 걸어서 주차장에 도착해 우린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어둠이 깔라는 장성댐에서의 아쉬운 이별이였다.
 

 

차를 몰아 광주에 도착했다.

차에 탔던 순행이 앵미 재욱이 길수를 보내고
호텔에 돌아오니 전날 스위스전 축구를 보느라 못 잤던 잠이 몰려왔다.
샤워를하고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니 아침 6시였다.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었다.
세수를 하고 위치를 잘 몰라 택시를 타고
백운동에 있는 "광주순복음교회" 찾아가 7시 주일 예배를 드리고 호텔로 돌아 왔다.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봉수 기다렸다.
전날 봉수와 약속했던 나주시 "주몽"촬영지와 완도를 가기 위해서다.
얼마나 세차게 퍼 붓는지 야속한 비는 11시가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결국 포기를 하고 12시에 서울로 향했다.
대전을 거쳐 중부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다.
나의 가슴 설레이던 2박3일의 고향 방문 끝이났다.
 
연석.길수.순행.봉수.재욱.도규.정인.치원.
상용.득기.현영.향금.수성.앵미.미숙.명희.복순.재옥이 그리고 나는

 

실록이 짙어 가는 초 여름날 메마른 중년의 가슴속에 아름다운 추억을 새겨 놓았다.
 
 
2006.6.28 형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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