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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먹고 사는 중년

나의 살던 고향은

 

 

 

 

 

나의 살던 고향은/비(Rain)

 

 

나는 읍내 사는 친구들 보다 추억이 훨씬 더 많았었다.
5리 길을 걸어서 등 하교를 했기 때문이다.
읍내를 지나 황룡강 징검 다리를 건너 삼동 중학교를 우측에 끼고 기산리 외기를 지나
큰 느티나무가 서 있고 길가에 묘가 몇개 있는 작은 동산 좌측을 돌아 한참을 논길로 가면 내가 살던 기산리 부동이다.
벼가 누렇게 익어 황금 들판으로 변하면 그 논길에는 벼 메뚜기도 빨간 고추 잠자리도 참 많았었다.
논길이 끝날때까지 고추 잠자리가 길을 안내해 주다가 마을 입구에 다 달으면 공중으로 날아서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었다.
논 길 중간에 전봇대도 하나 있었다.
그 전봇대에 쉬아를 참 많이도 했던 기억이 난다.ㅎㅎㅎ
기산리 부동은 어린시절 꿈을 먹고 자라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아주 많이 갖고 있었다.

 

 
마을 뒤에는 논이 조금 있고 그 논 뒤에는 산이 둘러처져 있었고
마을 앞에는 천연 잔디구장이 있어 읍내 애들이 갖고 놀다 찢어져 버린 공을 주워다가 지푸라기를 넣어 매일 축구를 하고 놀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일제 시대때 그곳에 잔디를 심어놓고 일본 순경들이 말을 타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30년 전에 우리 만큼 좋은 천연 잔디구장에서 축구를 해본 사람들도 드물것이다.
겨울엔 그곳에 하얀 눈이 쌓이면 마음껏 눈싸움도 하고 군대 군대 정말 큰 눈 사람도 많이 만들었었다.
눈이 녹으면 질퍽한 질퍽한 그곳에 오징어 가이생을 그려 놓고 편을 짜서 상대 진영을 공격해 들어가
골인 지점에 다 달으면 이기고 한명도 골인을 못하면 진영을 빠꾸는 놀이였다.
옷이 흙으로 범벅이 되고 온 몸이 상처 투성이가 되어도 오징어 가이생이 왜 그리 제미 있었는지 모른다.
잔디구장 앞에는 황룡강 중류인 개천이 흐르고 있어서 여름이면 그 곳에서 멱을 감고 물고기도 많이 잡았다.
서울에선 올갱이라고 하는 그곳 말로는 대사리도 정말로 많았었다.
손으로 긁으면 한 주먹씩 모아졌다.
까만 가마솥에 된장 몇 숱가락 퍼다 넣고 끓여서 옵핀이나 탱자나무 까시 끝으로 파서 먹으면 모래가 아스락 아스락 씹혔지만 정말 맛이 있었다.

요즘은 올갱이가 간에 좋은 건강식이라니ㅋㅋㅋ
그 국물에 보리밥 말아서 먹으면 정말 꿀 맛이었다. ㅎㅎㅎ먹고싶다.
강뚝 너머엔 저 멀리 차 길까지 끝없이 논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가끔 겨울 방학때면 그 뚝너머 양지 바른곳에 앉아서 앞으로만
계속 달려가는 차를 보고서 저 차들은 어디로 저렇게 열심히 가는걸까?
정말 궁금했었다.
그러다 그 곳에서 잠이 깊이 들어 해가 기웃 기웃 서산에 질 무렵 추워서 깨어 집으로 온적도 있었다.
해가 질 무렵엔 노을이 온 서산을 붉게 물들여 정말 말로 표현할수 없는 장관을 연출 했었다.
정말! 아름다운 기산리 부동!
나를 그렇게 좋은 환경에 태어나 자라게하신 부모님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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