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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먹고 사는 중년

장성 사람들 향우 데이트

 

 

 

 

장성 사람들 향우 데이트/비(Rain)

 

 

 

 

작년 2011년 10월에

고향 초등학교 총동문체육대회가 있었다.

"장성사람들" 이라는

인터넷 신문기자가 찾아 와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같은 동창 친구가 추천 했다면서

"난 자랑 할것도 없고 할말도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을 했더니

끝까지 부탁을 해서 했던 인터뷰 내용이다.

어린시절 가슴속에 묻어둔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말해 달라고 해서

30분정도 인터뷰를 했던 걸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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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학교에서 방송을 해요.

 기산리 내기, 외기, 서삼 사는 학생들은 빨리 집으로 가라고요.

비가 많이 와서 황룡강이 넘치기 전에 얼른 집에 가라는 방송이죠.

그럼 아이들은 영락없이 포로로 잡혀가는 사람들처럼 한 줄로 서서 내리는 비를 쫄딱 맞고 황룡강으로 걸어가죠.”

그가 살던 마을은 현재 문화예술회관 건너편인 장성읍 기산리 부동마을. 지금은 다리도 놓아져있고,

 장성댐이 있어 아무리 비가 와도 끄떡없지만 그때는 황룡강이 넘치기 전에 하교를 해야 했다.

책이 젖을까봐 책보를 옷 안에 메고 황룡강으로 가면 등교할 때 건넜던 철다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아버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 아버지 등에 업혀 시뻘건 황톳물을 건너면서 혹시 아버지가 넘어지면 어떡하나 불안해했다.

자칫 무슨 얘기 하느냐고 핀잔을 듣는단다.

이제 나이 오십 청년층인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살았다고 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김형주(이삭지오 대표, 중앙초 25회) 대표의 얘기를 듣노라니 옛날이 한 장에 엮여진 파노라마처럼 영상이 스친다.

굳이 따지자면 그가 졸업한 학교는 중앙초가 아니다.

6학년 2학기때 서울로 전학을 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향사람 김형주 대표를 찾아간 것은 그의 학적이 영원히 중앙초를 벗어날 수 없는 데다

지금도 삶 일부를 고향 친구들과 교유하며 채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매년 동창회에서 그 시절 시뻘건 황톳물을 함께 건넜던 광규, 진옥, 석철, 양수, 홍남, 정옥이

그리고 옆집에 살던 순옥이, 옆동네 사는 봉수, 명희, 수형이, 승호를 만나 곧잘 어린시절 이야기를 한다.

고향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김 대표의 힘이 컸다.

“월드컵 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을때였어요. 고향을 떠난지 29년만에 동기들 모임이 없다는 것을 알고 발벗고 나섰어요.

동창회를 준비해서 창립하기까지 4년이 걸렸어요.

새벽까지 컴퓨터를 켜놓고 연락오기를 기다렸어요.

물론 할 일이 그렇게 없냐고 한심해 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하지만 난 중년에 뭔가 가슴 설레고 아름다운 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코흘리개적 친구들과 얼싸안고 한바탕 신명하게 놀고 싶었지요.”

김 대표의 이런 열정에 밑바탕이 되어 현재 345명 졸업생 중 200여명의 연락처를 확보했고,

25회 동창들이 뭉치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동창들은 자주 얼굴을 보며 우정을 나눈다.

김 대표가 고향에 대해 많은 추억을 갖게 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전국 오일장을 돌아다니며 옷 장사를 하시던 아버지는 황룡장이 서는 날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들에게 국밥 한 그릇을 꼭 사주셨다.

장이 파하고 아버지 손을 잡고 황룡강 뚝길을 걸어 집에 오는 길에 아버지는 늘

“우리 형주는 공부 열심히 해서 아부지처럼 오일장에서 힘들게 장사하지 말고 큰 사업을 하는 장사꾼이 되거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남다른 교육열은 몇 백평 농토와 황룡강이 바라다 보이는 아름다운 작은 마을의 초가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를 했다.

“아마 그때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았더라면 이렇게 시리도록 아름다운 고향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기는 힘들었을겁니다.”

김 대표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사업을 하고 있다.

기독교 관련 제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전문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의 꿈도 기독교 관련 문화센터 내지는 백화점을 짓는 것이다.

“초등학교때 학교 갔다 오면 정제 천장에 메달아 놓은 대나무 밥 소쿠리에서 보리밥을 양푼에다 푸고 장독간으로 가요.

고추장을 한 숟가락 퍼서 넣고 비비면… 정말 꿀맛이었어요.

아니면 시원한 샘물을 두레박으로 퍼서 밥을 말고 노란 된장에 고추를 찍어 먹으면 그 맛도 일품이었는데…. 지금도 그 맛이 날까요?”

마음껏 고향 얘기를 해서일까?

김 대표는 ‘한바탕 진한 꿈을 꾼 것 같다’는 말로 기자와의 만남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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