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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먹고 사는 중년

설 명정(진옥이네 유과)

 

 

 

 

 

 

설 명절(진옥이네 유과)/비(Rain)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신분 들 설 날 복 많이 받으세요~~!!)

 

 

 

 

설 전날 잠자기 전에

내일 아침 부모님께 새배를 하고

동네 어디로 제일 먼저 새배를 하러 갈까 생각하면

언제나 친구 진옥이네 집이였다.

진옥이네는 울 동네에서 유일하게 커다랗고 동그란 유과를 만들어 세뱃돈 대신 주는 집이었다.

진옥이 할머니가 지름이 약15센티 정도 되는 유가를 만들어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놓고 세배가 끝나면 양손에 하나씩 2개씩을 주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 유일하게 세배하려고 줄을 서는 집이었다.

소문이 안동네(외기)까지 퍼져서 그 동네 아이들도 세배를 하러 와서 늦으면 못 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먼저 하겠다고 세치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었다.

 

찹쌀을 곱게 빻아서 반죽해

동그랗게 만들어 기름에 튀겨서

양면에 조청을 발라 쌀 펑튀기를 붙혀서 만든 유가는 정말 달콤하고 맛이 있었다.

울 부모님이 영광에서 장성으로 처음 이사를 와서 진옥이네 옆 집에 살았단다.

그 옆집에 살면서 엄마는 나를 임신해서 낳아서 키우다가 내가 2살때 부턴가 장성 오일장에 가서

아버지하고 같이 옷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나를 진옥이 할머니 한테 맡기고 장엘 가시곤 했단다.

진옥이 할머니는 자기 친 손주인 진옥이 보다도 나를 더 많이 업고 다니셨단다.

 

내가 배가 고파 울면

진옥이 할머니는 쪼그랑 젖을 물리고

"아이고 우리 와가리 아이고 우리 와가리" 하시면서 나를 달래셨단다.

"와가리"는 어릴적 내 별명이다.

엄마가 오일장 파하고 황룡강 다리를 건널 쯤이면

배가 고파 우는 내 울음소리가 얼마나 큰지 온 동네는 물른 황룡강 다리까지 들렸단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이 울음소리가 너무 크다고 "와가리"라는 별명을 붙혔단다.ㅋㅋ

 

키가 크고 덩치도 컸던 난 그 은혜를 갚으려고

초등 6년을 몸이 약하고 순해 빠진 진옥이 보디가드 노릇을 했다.

학교 갈때면 진옥이 할머니는 진옥이 손을 잡고 꼭 동구밖까지 따라 나와서

"아이 와가라~ 우리 진옥이 쪼께 잘 데꼬 갔다 오니라 핵꾜 댕겨 오믄 나가 유과 하나 줄팅게"

나는 구정날이 지나서도 봄이 오는때까지 가끔씩

진옥이와 함께 할머니가 광에서 꺼내다 주는 유과를 먹곤했었다.

"아이고 우리 와가리 우리 손지 잘 데꼬 댕겼승께 유과 한나 줘야 쓰겄따"이러면서 주시곤 했다.

내가 6학년 2학기때 서울로 전학을 올때도 할머니는 동구밖까지 마중을 나오셔서 눈물을 흘리면서

"아고 으져야쓰까~우리 와가리 서울 가불먼 우리 진옥이는 누가 챙긴다냐

서울 가서 몸 건강 혀불고 공부 열심히 혀서 훌룡한 사람 되각고 오니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나이 20살이 넘어

군대 가려고 신체 검사 받으러 장성 갔을때

고향 떠난지 처음 진옥이네 집에 들렸더니 귀가 먹고 치매가 오셔서 나를 못 알아 보셨다.

대청 마루에 멍하니 앉아 계시는 할머니 귀에다 대고

"할머니 저 영광댁네 세째 아들 와가리 왔어요" 하면

"응 와가리 진작에 서울 갔씨야~ 와가리 서울 갔는디 한번도 안온다 나쁜놈"만 반복 하셨다.

그리고 한 10년이 지났을까 진옥이 할머니는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진옥이는 언젠가 동창회에서 만났는데 딸하나에 늦둥이 아들을 낳고 수원에 살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구정이 다가 오면 진옥이 할머니가 생각나고 

할머니가 주시던 그 달콤한 커다란 유과가 먹고 싶다.

진옥이네 그 유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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