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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먹고 사는 중년

빚보증

 

 

 

 

빚보증/비(Rain)

 

 

아버지가 큰아버지 빚보증을 섰다.

어느 날 큰아버지가 야반도주를 해서

아버지 하시던 사업장과 집에 차업이 들어와서

가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다시피 해서 명륜동 산꼭대기로 이사를 했다.

명륜동 산 중턱에 커다란 은색 물탱크가 있었다.

물탱크 우측 전빵에선 물 한지게에 10원을 받고 팔고 있었다.

맨 꼭데기 부대 밑에 살고 있던 소년은

물지게를 지고 허물어진 성곽 길을 따라올라 산꼭데기까지 물을 져 나르곤 했다.

성곽엔 늘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 소년의 가장 힘들었던 어린 날 추억이 머물러 있는 곳.

벚꽃이 피고 벚꽃이 지면 꽃잎이 성곽 너머 부자 동네 성북동으로 눈처럼 훨훨 날아간다.

성곽 주변 공원화로 철거가 시작되고

전세 보증금을 다 떼이고 물탱크 아랫동네로 이사를 했다.

중년이 된 그 언젠가 봄날에 아내와 함께 부대 밑에 차를 대놓고 성곽 길을 걸었다.

벚꽃이 떨어져 바람에 날려 성곽을 넘어 성북동으로 날으고

그 힘들고 어려웠던 아픈 추억이 가슴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중년이 된 소년은 세월 등지고 왠지 낯 설은 그곳에 한참을 머물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절대 빚보증을 서지 마라.

패가망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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